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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여행기 2: 이민하고 싶은 이유

    태국 여행기 2: 이민하고 싶은 이유

    태국은 인구의 90%가 불교를 믿는 나라이며, 도시 곳곳에 불상을 볼 수 있고, 그 앞에 꽃, 향, 붉은 음료수를 공양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사당 앞에 높인 붉은 환타,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굉장히 자주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불교 경전이나 설화에서 자주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전생에 부처님이나 사리탑에 꽃을 정성껏 올리거나, 남이 올린 꽃의 먼지를 털어낸 공덕으로 다음 생에 ‘위덕을 갖춘 아름다운 외모’를 얻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태국인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단순한 유전적 우연이 아니라 오랜 공덕의 축적일까. 실제로 태국 사회에서 아름다운 외모는 전생에 쌓은 ‘탐분(Tham Bun, 공덕)’의 결과물로 여겨지기에, 치장은 단순한 허영을 넘어 자신의 업을 돌보는 긍정적인 행위로 존중받기도 한다.

    태국 여행기 2: 이민하고 싶은 이유
    Photo by Norbert Braun / Unsplash

    반면,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의 미는 청순, 순수, 절제에 있다. 하얗고 가느다란 몸, 여리여리한 실루엣이 미의 표준이며 종종 그에 벗어나는 여성에게는 ‘섹시’, ‘건강미’라는 레이블이 별도로 붙는다. 몸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패션을 선호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기준과 명백히 어긋났다. 한국적 미의 질서가 허용하는 이른바 ‘건강미’라는 수사조차 선에서조차 나의 추구미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주변인들의 검열에 노출되며, 스스로를 계속 축소시켜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옷장을 타협시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국 여성들과 느낀 동질감이 얼마나 큰 해방구였을 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내가 소속될 곳을 찾았구나’는 감격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곳의 여성들은 XS부터 XL에 이르기까지, 신체 스펙트럼 상 모양과 크기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실루엣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다양한 체형들을 볼 수 있었는데,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하이패션 체형, 작고 마른 요정 체형, 심미적인 근육 데피니션이 드러나는 체형, 풍만한 곡선형 등 다양성 그 자체였다. 이들은 각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각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심미적 상태를 구현하는 수행 주체였다. 

    일원화된 미적 규범에 억눌려 있던 나의 감각이 비로소 확장되는, 형언하기 어려운 인류학적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물론 밤 거리의 쥐와 바퀴벌레와의 조우가 이 고양된 감격을 어느 정도 조정시켰지만 말이다.)

    한국 중장년 여성의 경우, 스스로 ‘여자로서의 정체성’과의 단절을 겸허히 수용하고 ‘무성적(Asexual) 존재’로 규정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아줌마 파마 머리’는 그 결의의 표현이자 통과 의례이다. 반면 태국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과감한 컷의 드레스와 굽 높은 구두를 통해 여전히 매력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해방적인 광경 앞에서, 나는 비로소 이곳을 내 삶의 터전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이곳은 남자들 조차 아름다웠다. 태국의 상좌부 불교는 성별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전생의 업에 따라 잠시 머무는 상태로 보기에, 제3의 성(Kathoey)에 대해서도 유독 관용적인 문화를 지닌다. 소년의 마른 근육질 몸에 정교한 의술과 탐미적 집착이 결합된 이들의 신체는, 때로 생물학적 여성성을 압도하는 고혹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며 젠더 퍼포먼스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방콕 길거리는 강남의 의료 자본주의를 연상케 하는 피부과와 성형외과로 빼곡하며, 친숙한 시술의 이름들이 메뉴판에 적혀있었다. 편의점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소비 공간조차 한국과는 그 위계가 다르다. 화장품과 스킨케어 섹션은 단순한 구색 맞추기를 넘어 생활 필수재로서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파운데이션과 콜라겐, 각종 미백 성분들이 일용품의 형태로 유통되는 이 현상은, 태국인들에게 ‘미(美)’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하고 갱신해야 할 보편적 권리이자, 현생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 수행적 공덕’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 태국 여행기 1: 음식에 대하여

    태국 여행기 1: 음식에 대하여

    이미 태국 여행을 가기 전부터 ‘태국은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결과 ‘태국 음식이 맛있다’는 발언은 ‘한국은 김치가 맛있다’는 말만큼이나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언어를 연구하던 비트겐슈타인은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태국 음식에 대해 고작 ‘맛있다’고 평할 거라면, 그냥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

    그것은 누군가 수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소설을 보고 겨우 ‘재밌다’고 갈음하거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 ‘착하다’고 정의해 버리는 것과 같다. 이토록 쉽게 뱉은 안일한 가치 판단은 실상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다. 

    사실 어느 나라든 음식을 잘 찾아보면 맛은 있다. 식욕은 인류 보편적인 욕망이기에, 인간은 어떤 기후와 풍토 속에서든 기어코 미식을 구현해낸다. 그러니 ‘맛있다’는 말은 특정 식문화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지나치게 진부화trivialize된 표현이다.

    특히 ‘태국 과일이 맛있다’는 말에는 속이 뒤집어진다. 과일은 본래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자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이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태국의 식재료와 음식의 실체는 단순히 ‘맛있다’는 일차원적인 언어적 프리즘을 통해 전달될 수도, 전달되어서도 안 된다.

    잠깐 태국에서 시선을 돌려보자. 남아공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흘려듣곤 하지만, 한국에서 유통되는 것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한 손에 기분 좋게 쥐어지는 넉넉한 크기, 돌기 없이 매끄러운 표면. 저항 없이 미끄러지며 들어가는 칼날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껍질에서 분리되는 과육. 게다가 이런 아보카도 한 바구니가 고작 3,000원(비록 농장에서 도난된 장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지만)이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단순히 ‘맛있다’고 평하기엔 질적인 우월함이 너무나 압도적이었음을 방증한다.

    다시 태국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팟타이든 카오팟무쌉이든 특정 메뉴의 맛을 따지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태국 음식을 다른 세계와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다름 아닌 작지만 농축된 생명력, 그리고 무자비한 풍요다.

    생명력

    한 주먹에 꼭 쥐어지는 아담하고 매끄러운 사과. 유럽에서 운 나쁘게 마주치던 퍼석한 사과에 대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킬 만큼, 과육은 아삭하고 달콤했다. 얇은 초록 껍질 속에 단단히 응축된 귤은 입안에서 터지는 순간 새콤달콤함의 파편을 흩뿌렸다. 반으로 갈린 패션프루트는 한 방울의 잔여물도 허락지 않겠다는 듯 스푼 위로 소복이 올라앉았고, 씨앗 사이사이 맺힌 과즙의 농도 짙은 상큼함을 수류탄처럼 터뜨리며 미뢰 위에서 화려한 난장을 벌였다. 그리고 태국의 작은 고추들. 그것들은 고농축 우라늄과 같은 폭발력을 품고 혀끝을 강타한 뒤 깔끔한 감칠맛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작지만 농축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비단 식재료에만 국한된 형용이 아니다. 이곳의 모든 생명은 작고 알차며, 어떤 자의식의 제약도 없이 모든 가능성을 펼치며 자유롭게 존재한다.

    심지어는 쥐와 바퀴벌레까지도 말이다.

    잠시 주제를 이탈하자면, 야간 비행 일정으로 인해 새벽 2시경 음료를 사기 위해 방콕 시내를 배회하던 날의 일이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건강미 넘치는 해충을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모국인 한국은 내가 아는 가장 결벽에 가까운 위생을 지닌 민족의 나라다. 그 사이에 있을 때 나는 지극히 평균적 지위를 유지했으나, 그날 밤 방콕의 만난 어둠의 생물들이 방출하는 활력vitality과 생명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하수구 증기와 뒤섞인 그 생경한 에너지는 역류하는 구역질을 동반했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까지 흘려야 했다. ‘자연’에 익숙한 로날드 조차, 꽉 잡은 손에서 본능적인visceral 혐오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풍요

    어쨌든 이렇게 식재료와 생태계에서 빛을 발하는 농축된 생명력에 더해, 오감에 쏟아져 들어오는 풍요로움은 나를 또 한번 감탄시켰다. (환율 하락으로 인해 더이상 크게 저렴하진 않다) 비슷한 가격으로 한국 기준 2인분 같은 1인분을 받는 것에 느끼는 감동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시각적 풍족함 또한 문화 충격을 줄 정도의 자극이었다. 한국에서 타코야키란 모름지기 인내하며 기다려 얻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엔 언제든 취할 수 있도록 산더미처럼 쌓인 채, 완벽한 온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자제력을 상실한 방문객이라면 필연적으로 탐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자비한 풍요였다.

    그럼에도 태국 사람들은 외적인 관리와 정체성 구현에 거국적인 정성을 쏟는 듯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사실은 남성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 이어서 쓰겠다.

  • 남아공 필수 기념품

    남아공 필수 기념품

    남아공에 가게 된다면, 아니면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를 방문했을 때 남아공 수입품을 발견한다면, 꼭 시도해보면 좋은 품목을 정리했다.

    빌통

    빌통(Biltong)은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반드시 시도해봐야 하는 식품이다. 

    빌통은 육포가 아니다. 말린 스테이크다. 남아공 사람 앞에서 빌통을 육포(Jerky)에 비교하는 것은 문화적인 실례에 준하는 것이고, 상대에 따라 기분이 크게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아공 사람은 이미 수많은 도발을 겪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당신의 무지를 정정해줄 것이다.

    빌통은 생고기에 절대 열을 가하지 않고 찬 바람으로 건조하여 제조한다. 그리고 설탕이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식초, 설탕, 후추로 큐어링하기 때문에 단순 육포에 비해 더 건강하고, 우월한 음식이라고 여겨진다. 

    ‘육포류’라서 안타깝게도 한국 국내 반입이 금지되는데, 심지어는 수입도 안 된다.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용한 육포 수입 국가 목록에 남아공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만드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빌통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없다. 그래서 몇 안 되는 국내 빌통 판매자들도 자체 제조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짓수도 제한적이다.

    언젠가 영연방 중 한 곳의 빌통이 국내에 들어온다면(왠지 남아공이 수입 허가를 받는 것 보다 더 현실적일 것 같다), 단순 와인 안주 취급을 할 것이 아니라 마트 정육 코너 옆에 작은 판매대를 하나 내어주는 것이 존중을 표하는 마땅한 방법이다. 실제 남아공 마트에서는 정육점내 큰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빌통 건조 시설. 출처: Biltong Depot

    빌통의 국내 생산이 더 어려운 이유는, 한국의 기후가 빌통 제조에 이상적인 조건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필요한 빌통에게 일년 중 습한 날이 꽤 많은 한국은 결코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콰줄루나탈(KwaZulu-Natal)지역만 가봐서 그런지, 남아공이 훨씬 습하고 끈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튼, 그렇다고 한다.

    기후 뿐만이 아니다. 대량 생산할 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국내 빌통 생산자들이 이러한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빌통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감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너무 크다. 대한민국 국민의 견문을 넓히고, 국내 거주 남아공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주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드루어보르스

    로날드와 친구였던 시절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 받곤 했었는데, 언젠가 ‘이게 뭔지 맞춰보라’며 사진을 하나 보내온 적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 부족들이 구강위생 도구로 사용하는 막대기인 치목(齒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드루어보르스(Droëwors)였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당시 나에게 보내온 사진.

    드루어보르스는 말린 소세지라는 뜻이다. 쉽게 건조되도록 얇게 잘랐다고 한다. 빌통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드루어보르스도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개껌 같이 생겼지만, 실제로는 소금 함량이 좀 높은 편이라 반려견 급여로는 적합하지 않다.

    맛은 짭짤한 말린 고기. 건조 정도에 따라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도 있고, 문방구에 팔던 ‘숏다리’같이 건조하고 딱딱한 것도 있다. 촉촉할 수록 더 맛있다.

    남아공 사람들의 건강 상식에는 ‘촉촉한 드루어보르스는 지방 함량이 높고, 건조한 것이 건강에 낫다’라는 내용이 있다. 무엇이 더 맛있을 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결론

    모든 나라에는 자국만의 육포가 있다. 싱가포르의 비첸향(Bee Cheng Hiang), 달달하고 덜 자극적인 한국식 육포,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 독일의 되르플라이쉬(Dörrfleisch), 그리고 남아공의 빌통. 나는 사실 육포를 자주 먹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나라 말린 고기든 전부 거기서 거기지만, 빌통의 우월성에 대한 남아공인들의 자부심을 이해한다면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제적으로 존중을 표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참고로 편의상 드루어보르스를 빌통의 하위 개념으로 배치했지만, 실제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러스크

    많은 사람들이 ‘러스크’라고 하면 튀겨서 설탕을 입힌 식빵 조각을 떠올릴 것이다. 아프리칸스어 이름은 Beskuit인데,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도록 두 번 구워 딱딱하게 만든 빵 Beschuit가 아프리카 기후에 맞게 현지화된 것이다.

    버터밀크(Karringmelk)를 넣는다는 특징도 있다. 참고로 버터밀크는 버터 생산의 부산물로, 이름과는 달리 저지방이며 영양적 가치도 높다. 남아공 마트에서는 항상 유제품 칸에서 볼 수 있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그냥 먹으면 턱이 나갈 수 있지만, 일부러 딱딱하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내 이야기다). 공식 레시피가 존재하는 라면을 생으로 부숴서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커피에 적셔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구글 검색 결과

    작년 남아공 방문 당시 나는 아직 과잉 절제를 하던 중이었어서, 딱 봐도 설탕과 밀가루가 압축되어 칼로리 밀도도 높고 중독성도 강해보이는 러스크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참고로 나는 수년간 디저트라는 개념을 외면하며 살았고, 한때는 그 억압된 식욕이 컬리플라워와 브로콜리 과식으로 귀결되었을 정도로 보상 체계가 왜곡된 상태였다.

    참고로 러스크는 디저트가 아니라 아침 식사지만, 나는 단맛이 나는 탄수화물은 무조건 디저트 취급을 한다.

    디저트는 여성의 3대 본능 중 하나로, 아무리 외면하고 길들이더라도 수천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강력한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슈퍼마켓에서 무설탕 & 무밀가루 버전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근위대가 손 흔드는 어린이들을 무시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듯, 나 또한 러스크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을 힘겹게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건강한’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러스크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디저트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음을 의미했다. 건강 디저트는 오랫동안 ‘진짜 디저트’의 망령 취급을 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퀄리티가 좋아져서 섭취했을 때 만족감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스테비아 등 감미료는 화학적 작용에 있어서 설탕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설탕을 오래 안 먹다보면 맛을 까먹기 때문에 대체 가능하다.)

    건조한 편인 시리얼 위트빅스(Weet-bix)를 기준으로 보자면 러스크는 더 촉촉하지만, 커피에 적셔서 먹는 목적으로 생산되었으므로 밀도가 높고 두께 자체가 묵직해서 씹는 데 상당한 노동이 요구된다. 굳이 적셔서 먹지 않더라도 커피와 잘 어울린다.

    내가 고른 버전은 밀가루 대신 아마씨, 코코넛 등으로 만들어 섬유소도 훨씬 많고, 영양적으로도 더 밀도 높다. 요새는 키토제닉(Ketogenic) 식품의 품질이 너무 좋아서 밀가루의 수요탄력성이 많이 높아졌을 거라 예상이 된다. 한국에서도 점점 구하기 쉬워지고 있지만, 아직은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내가 해외 생활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키토제닉 및 대체 식단 식품에 대한 접근성이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남아공에서도 구하기 힘들어졌나보다

    혈당 관리를 하시지만 ‘건강 음식’에 의심이 있으신 로날드 아버지께도 드렸는데, 먹을만 하다고 놀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러스크를 현지에 있는 동안 세 번 정도 사 먹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사왔는가? 아니다. 회사에 기념품으로 가져갈 것을 제외하고, 개인 소비용으로는 사오지 않았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회사에 가져간 것

    다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을 것이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와인을 제외하면 남아공 수입품은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회성 소비에는 관심이 없다.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난도스 소스

    난도스(Nando’s)는 포르투갈인들이 남아공에 넘어와 만든 치킨 브랜드로, 영연방 국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닭을 튀기지 않아 패스트푸드 중에서는 나름 건강식으로 간주된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난도스는 식사 메뉴로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바로 시그니처 소스. 한국에 사오면 좋은 것이 바로 이 소스다. 페리페리 칠리로 만들었으며, 설탕이 첨가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현지가 더 저렴하기 때문에 기념품으로서의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매운맛도 별로 안 맵다.

    우리도 작년에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한 병을 사왔는데, 나는 사실 1년이 넘도록 무슨 맛인지 알지 못했다. 사온 직후 닭가슴살과 같이 먹어보려 했지만, 로날드가 굉장히 소중하게 아껴 쓰는 것을 알고는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닭가슴살은 야채 취급을 받는 남아공 출신이다보니, 로날드는 내심 소스를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로날드는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선제적으로 안 건드렸다)

    최근들어 처음으로 난도 소스를 제대로 맛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연방 중 한 곳인 싱가포르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부기스(Bugis)의 몰에 자리한 난도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스가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는데, 신맛을 좋아하고 타바스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난도 소스가 정말 잘 맞을 것이다. 우리도 출국 전에 소스 세 병을 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로날드에게 전부 양보할 것 같다.

    아마룰라

    코끼리 열매라고 불리는 마룰라(Marula)와 크림, 설탕으로 만든 남아공 리큐르. 이 제품은 국내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설탕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입에 착착 감기는 화사한 성인용 아이스크림에 가깝다.

    작년 남아공 방문 당시에도 나는 설탕을 피하는 중이었지만, 외국을 방문한 손님이 된 입장에서 호스트가 권하는 것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아래 사진이 찍힌 날, 아마룰라는 많이 마셨다.

    남아공 필수 기념품

    알코올이 함유된 굉장히 달콤하고, 짙은 농도 아이스크림을 녹여서 마시는 맛이다. 그런데 실제 아이스크림과도 잘 어울린다. 깔루아 밀크 같이 칵테일을 만들기에도 좋다.

    나는 참고로 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년에 5회 이하로 마신다. 하지만 아마룰라는 그 5회 중 2회 정도는 내어줄 수 있는 특별한 술이다.

    다음 번 남아공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면, 더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면서 이 목록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